약리학 기말고사 당일 새벽,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지만 절대 깨어 있어야만 한다. 아직까지 수많은 약물 이름이 머릿속에 떠다니기만 하는데, 전날도 3시간밖에 못 잔 탓에 정신은 혼미하다. 그래도 악으로 깡으로 버티며, 연필을 끄적인다. 뭐라도 더 봐야, 한 문제라도 더 맞추지 않겠는가.
약리학 시험기간은 코로나 장기 후유증이 겹친 탓에 너무나도 힘든 시기였다. 시험범위는 정말 많았는데 하루종일 피곤하고 잠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약리학 시험기간이 유난히 힘들었을 뿐이지, 사실 매 시험기간이 내게는 고역이었다. 본과 1학년 1학기가 끝나고 되돌아보니 무려 15차례의 시험을 쳤었는데, 전날 밤을 새고 치지 않은 시험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 말인즉슨 최소 15일은 잠을 자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 건강이 과연 안녕한가 싶었다.
본과 1학년을 시작하기 전, 선배한테 이런 질문을 했었다.
"선배, 수능 준비할 때랑 본과 1학년 중에 어느 때가 더 힘드셨어요?"
돌아오는 대답은 이러했다. "본과 1학년이 아무리 빡세다지만, 수능 준비할 때만큼은 아니니까 걱정 마."
지금 생각해보면, 남들에게는 충분히 맞는 말일 수 있어도 나한테만큼은 아니었다. 물론 수능을 준비할 때처럼 정신적 압박이 있지는 않았지만, 그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공부량이 많은 데다가, 공부할 시간은 너무나도 적었다. 성적만을 위한 공부를 추구하지 않는 성격이라, 남들보다 공부량이 더 많아지지 않았나 싶다. 사실 유급하지 않는 것만이 목표라면, 생각보다 여유로운 의대 생활을 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의대생이 다른 대학생에 비해 절대적인 수면 시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문득, 의대생이 빈번하게 겪는 수면부족이 신체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증이 들었다. 나의 경우 밤샘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스트레스가 많아지고 스스로가 산만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침 예방의학 실습 과제가 있어 '의대생의 수면의 질과 성인 ADHD의 상관관계'를 주제로 선정해 연구해보았다.
전국 의대생 중 532명이 설문조사에 응해주었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카이제곱 검정, 로지스틱 회귀분석 등을 시행했는데 흥미로운 결과가 도출되었다. 수면의 질이 낮을수록, 성인 ADHD와의 연관성이 유의하게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심지어 예과생보다 본과생에서 그 연관성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연구 결과를 보니 최소한의 수면은 취하면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수면은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생리 기능이다. 잠의 중요성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겠는가. 높은 학업 요구량 때문에, 숙면을 취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저 아쉬울 뿐이다. 다른 대학생처럼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의대생의 잠 못 이루는 밤'만큼은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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