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가 유례없는 갈등 상황을 겪으면서 정책 소통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의사와 정부 간의 극한 대립이 장기화하면서, 의료계 내부에서도 단순한 정책 비판을 넘어서 대안과 방향을 제시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한의료정책학교가 1기 교육과정을 앞두고 있어 관심이 쏠린다. 의료인 스스로가 현장의 목소리로 정책을 만들고,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 제도 개선으로 이어가는 역량을 키우는 게 이 학교의 궁극적 목표다.
젊은 의사들의 베이스캠프가 되겠다는 포부 아래, 그 대상을 간호사 등 타 직역과 국민에게까지 확장하려는 모습이다.
메디칼타임즈는 대한의료정책학교의 강의 설계와 운영을 맡은 장재영 교육연구처장을 만나 그 취지와 향후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 예과생·전임교수 아우르는 커리큘럼 "열정·설득·의지"
대한의료정책학교는 지난 13일 1기 교육과정 지원자의 서류 접수를 마감했다. 그 결과 예과 1학년부터 면허 취득 10년 차 전문의까지 40~50명의 다양한 지원자가 모였다는 설명이다.
장 처장은 이들을 어떻게 선발할 것이냐는 질문에 "의료 정책에 대한 열정과 타인을 설득하려는 의지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고 답했다. 단순한 이력보다 정책을 공부하겠다는 마음과 타 직역·국민을 설득하고자 하는 태도를 중심으로 교육생을 선발하겠다는 방침이다.
의정 갈등 상황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만큼, 정원은 유동적이다. 학교는 17일까지 면접을 진행해 18일 합격자를 발표한 후 22일 개강한다.
그는 "서류 전형이 마감됐고 서류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2차 면접이 예정돼 있다. 무엇을 했는지보다는 의료 정책에 대한 열정이 있는지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 자기소개서에는 과거, 현재, 미래 구성을 통해 열정과 포부를 보도록 했다"며 "중요하게 보는 세 가지는 열정과 설득, 소통이다. 이젠 외부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원자가 의대생 저학년부터 진료 교수까지 폭넓은 만큼, 이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커리큘럼을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이들이 각각 가지고 있는 지식과 사회 경험이 모두 달라 적절한 강의 난이도를 정하는 것이 어려웠던 탓이다.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중점으로 하는 교육 특성상 강사진 섭외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장 처장은 사전 자료와 보충 자료를 별도로 제공해 이런 교육생 간 간극을 메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실습 과정을 조별 활동으로 편성해 서로의 강점을 융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연차별 균형을 고려해 예과생·전공의·전문의 등이 함께 논의할 수 있도록 조를 구성하고, 학교 운영진이 직접 팀 리더로 참여토록 하는 식이다.
커리큘럼은 총 16주에 걸쳐 4개의 모듈로 진행되며 ▲정책 역량 ▲정책 생산 ▲정책 실현 ▲국민 설득 과정을 다룬다. 한 개의 모듈은 2번의 강의와 1번의 워크숍, 1개의 발표로 구성된다.
장 처장은 강사진 섭외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이 커리큘럼의 의의를 전했다. 그는 "강사진인 박사님과 NHS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현지인의 인식 차이를 두고 강연자와 격렬한 토론을 벌였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해외 제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보다, 한국적 맥락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활용할지 고민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수강생의 스펙트럼이 넓다 보니, 강의 난이도와 콘텐츠 구성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 교육생 간 차이를 줄이기 위해 사전 자료와 보충 자료를 이원화해 제공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며 "또 실습 과정에서 조 편성 시 연차와 역량을 고려해 균형 있게 배치하고, 운영진이 팀 리더로 참여해 조율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 간호사·국민까지 대상 확장 "다양한 직역과 협업 추진"
커리큘럼을 만들면서 간호사 등 타 직역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본 것도 의미 있다. 간호법 관련 세션을 위해 간호학회, 전문간호사단체 인사들과 만나 협의했을 때 직역 간 상호 협력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것.
의사를 시작으로 다른 보건의료 직역들로 교육 저변을 넓힌 뒤, 종국엔 언론과 국회, 국민 등으로 대상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장 처장은 "간호법 세션을 위해 간호계 인사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나눴을 때, 이 커리큘럼을 간호대생들에게도 교육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들었다"며 "간호사는 물론 간호조무사, 물리치료사 등 다양한 직역과 함께하는 것을 고민했지만, 아직은 초기여서 의사만 대상으로 한 것이다. 향후엔 언론과 국회 비서관, 국민 등 저변을 넓힐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아직은 정책에 대한 의료계 수요가 적은 실정이다. 학교 역시 이를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온라인 코스를 별도로 운영키로 했다. 또 입문자를 위한 학습 자료와 단톡방 기반 정보 공유 체계를 구축했다.
교육 콘텐츠는 국회 입법조사처, 복지부 보고서, 학술논문, 전문 기사 등을 기반으로 하며, 모듈별 산출물과 피드백은 전체 참여자에게 공유될 예정이다. 온라인 과정을 일종의 정보 허브로 만들어 검증된 정책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정부, 국회, 언론계 관계자들과의 특강과 공청회, 비공식 모임도 연계해 실무자와의 접촉면을 넓힌다. 비슷한 연령대의 의사와 관료를 매칭하는 일종의 '동기제' 프로그램으로 의료계·정부 간 정책 공감대를 장기간 유지하겠다는 목표도 담겼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없는 학교의 특성으로 이런 접근이 보다 수월한 모습이다.
또 인스타그램 등 SNS 채널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와 정보를 공개하며, 수강 여부와 무관하게 누구나 정책 담론에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적 구조를 취했다. 이렇게 정책 참여의 진입 장벽을 낮추겠다는 시도다.
장 처장은 "정책에 관심은 있지만 접근성이 낮아 기회를 놓치는 의료인이 많다. 의대생과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공부에 익숙하고, 정책에도 관심이 있지만 검증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경로가 너무 적다"며 "양질의 정보를 얻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현실적으로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자율 학습과 반복 수강이 가능하도록 온라인 과정을 구성했고, 각 모듈별로 학습 자료를 사전 자료와 보충 자료로 나눠 제공하고 있다"며 "수강생이 부족한 부분을 자유롭게 보완할 수 있도록 단톡방을 통해 질의응답과 자료 공유가 상시 이뤄진다. 이런 구조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학습자 간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수료 이후는 실전…멘토링·정책 연대로 저변 확대
수료 이후 교육생들이 원하는 분야로 진출하도록 돕는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멘토·멘티 프로그램이 단순히 학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단순한 진로 상담을 넘어, 멘토링으로 각자의 커리어 로드맵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수강생의 관심 분야에 따라 멘토를 매칭하고, 개별 또는 그룹 단위로 실질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또 수료 이후에도 이 멘토·멘티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동창회, 정책 동아리, 외부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적인 활동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시민사회와의 연대도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실제 개교식에는 중증질환연합회, 노숙인복지협회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했으며, 향후에도 다양한 단체와의 연계를 지속할 예정이다.
장 처장은 이런 교육 과정을 통해 정책에서의 의료계 경직성이 완화되기를 기대했다. 의료계 내부에선 정책에는 관심이 있어도 정치에 대해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민감한 의료 현안에 대해 의사 사회 주류 의견에 반하는 주장을 하는 것이 터부시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문제를 점차 허물어가겠다는 각오다.
그는 "정책은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 정치를 모르면 정책도 사회에 실현될 수 없다. 국민을 설득하고 타 직역과 소통하려면 언어와 태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며 "이전에는 의료계 내부에서 이야기만 하던 목소리를 이제는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하는 시점이다. 정책학교는 그 전환을 실천적으로 준비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료계는 젊은 의사들이 보기엔 지나치게 경직된 구조다. 이는 단순히 조직의 수직적 문화에 그치지 않고, 정책에 대한 태도나 관성적인 의사결정에도 스며 있다"며 "이전에는 의료 정책 논의에 유연성이 부족해 작은 균열에도 쉽게 조직이 무너졌다. 휘어질 줄 아는 유연함, 다름을 설득하는 말하기, 실현 가능성을 고민하는 사고가 의료계에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1기 수강생을 "타버린 땅에 새로운 씨앗을 심는 이들"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의정 갈등 사태에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고, 의료계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진 존재라는 기대다.
장 처장은 "한 지원자 자기소개서 첫 문장이 아직도 기억난다. '슬픔도 노염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니콜라이 네크라소프의 말이다"라며 "이들이 느끼는 분노 이면에는 의료계를 사랑하는 마음과 망가진 의료에 대한 슬픔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무겁고 민감한 과제일수록 진심과 실천이 필요하다. 학교 운영진 모두 생업을 병행하며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며 "수강생의 기대에 저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정책학교는 앞으로도 의료계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거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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