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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료기기·AI
  • 진단

오레스테스의 정신질환과 치유과정

고상백 교수
발행날짜: 2025-04-21 05:00:00

[연재 칼럼]고상백 교수의 의학과 미술

오레스테이아는 고대 그리스비극 중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삼부작이다. 제1부는 아가멤논(Agamemnon)으로 트로이아 전쟁에서 돌아온 아가멤논이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애인 아이기스토스에게 살해되는 이야기이다. 제2부는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코에포로이, Choephoroi)로 성인이 된 오레스테스가 신탁을 받고 누이 엘렉트라와 함께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살해하는 이야기이다. 제3부는 자비로운 여신들 (에우메니데스, Eumenides)로 이 칼럼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이야기이다.

오레스테스의 이야기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다. 그것은 고대 사회가 원시적 복수의 논리에서 벗어나 법과 질서로 나아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서사다. 아이스킬로스의 《에우메니데스》는 그리스 비극 가운데 서도 특히 정치적이고 철학적인 의미가 깊은 작품으로, 신화적 복수의 원리가 문명화된 합리적인 제도적 심판으로 대체되는 순간을 그린다. 하지만 이 칼럼에서는 정신병과 치유의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이를 조명하고자 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미케네 왕 아가멤논의 비극적 죽음에서 비롯된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아가멤논은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에 의해 살해된다. 이에 아들 오레스테스는 여동생 엘렉트라와 함께 아버지의 복수를 결심하고, 어머니와 그녀의 애인을 살해한다. 그러나 오레스테스는 곧바로 복수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원시적 질서를 수호하는 복수의 여신들, 에리니에스(Erinyes)가 그를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저주를 내린 것이다.

그림. 윌리앙 아돌프 부그로. 퓨리에(에리니에스)에 쫒기는 오레스테스, 1862.William-Adolphe Bouguereau. Orestes Pursued by the Furies (1862)

프랑스 화가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William-Adolphe Bouguereau)의 작품에서 오레스테스는 상반신이 벌거벗은 채 몸을 뒤틀며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와 불안이 뒤섞인 표정이 서려 있으며, 시선은 허공을 향해 있다. 두 손으로 귀를 막는 동작은 그를 뒤쫓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거나, 환청을 차단하려는 듯한 몸짓으로 보인다. 그의 근육은 긴장으로 가득 차 있고, 온몸이 극한의 불안과 혼란 속에 빠져 있는 듯하다. 가슴에 칼이 찔린 여성은 클리타임네스트라로 축측된다. 그의 주위를 감싼 여성들은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날카로운 시선을 하고 있으며, 날렵한 몸짓으로 오레스테스를 위협하고 있다. 이들은 복수의 신들로, 오레스테스를 향해 손을 뻗거나 뒤에서 압박하며 그를 광기로 몰아넣고 있다.

필립 오귀스트 엔느켕(Philippe-Auguste Hennequin)의 작품을 보면 좌측 중앙에 놀라움과 두려움이 가득한 창백한 모습의 청년이 오레스테스이다. 오레스테스에게 바짝 붙어 있는 한 여인은 엘렉트라이다. 이 비극을 슬퍼하는 사람들도 있고, 오레스테스를 붙잡고 있는 무리는 오레스테스의 행동을 막기 위하거나 또는 어머니 살해의 범인을 잡기 위한 행동으로 보인다. 바닥에는 가슴에 칼을 꽂고 있는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시신이 있고, 이 시신을 가르키며 오레스테스를 탓하고 있는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의 모습도 보인다. 계획한 살인을 완수한 오레스테스의 표정은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어머니의 가슴에 칼을 꽂은 오레스테스의 눈에는 이제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의 환상이 보이기 때문이다.

아아, 이 웬 여인들인가? 보시오, 고르고 자매들처럼

검은 옷을 입고 머리에는 우글거리는 뱀의 관을 쓴

저 여인들을! 이제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게 됐소.

그러나 내게는 결코 고통의 환상이 아니오.

저건 분명히 어머니의 원한에 찬 개들이오.

아폴론 왕이여, 저것들은 자꾸 불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서는 증오에 찬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대들의 눈에는 안 보이지만 내 눈에는 보이오.

그들이 나를 몰아대니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구려.

아이스퀼로스 <코에포로이> 중에서

그림. 필립 오귀스트 엔느켕. 오레스테스의 자책, 1800 Philippe-Auguste Hennequin. The Remorse of Orestes, 1800

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M. Scott Peck) 박사는 오레스테스가 신들 앞에서 취한 태도는 우리가 정신 치료를 통해 질병에서 벗어나는데 중요한 교훈을 시사한다고 했다. 오레스테스를 끊임없이 괴롭히면서 고통을 준 여신들의 복수가 사실은 본인 자신만이 경험할 수 있던 환청, 환상 등 정신병의 증상이라고 한다면, 오레스테스가 이런 고통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지 않고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궁극적으로 치유될 수 있었다. 그는 복수의 여신들을 공평하지 못한 형벌로 간주하지도 않았고, 자신을 사회로부터 피해를 보고 있는 억울한 희생자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레스테스는 가문에 내린 저주를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불행을 조상 때문이라고 탓하지 않았으며, 신들이나 운명을 탓하지도 않았다.

자기가 처한 상황을 자신의 행동에 따른 결과로 받아들였고, 따라서 길고도 지루한 치유의 과정을 스스로 택했다. 롤로 메이(Rollo May) 박사는 복수의 여신을 분노, 복수, 보복을 상징하는 충동(Id)으로 해석했다. 인간의 충동은 본능적이고 비합리적인 기능이지만, 오레스테스의 사례는 이러한 충동을 어떻게 조절하고 수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오레스테스의 재판정에서 합리성을 존중하는 아폴론 신은 복수의 여신을 영원히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아테네 여신은 달랐다. 그녀는 인간 사회에는 복수의 여신들 더 나아가 인간의 본능적 충동이 감당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했다. 억압 보다는 이해와 조화 속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레스테스 신화는 정신질환이 건강한 상태로 변화하는 과정을 상징한다. 이러한 놀라운 변화는 자신을 성찰하고 자기행동에 대해 책임을 진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정신병만이 아니다. 우리는 어려운 처지에 놓일 때 흔히 그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공격하거나, 자기를 합리화시키거나, 운명이라고 체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려는 자세가 아니다. 요즘 우리사회가 양극단으로 향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정신병리 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 잘못을 남에게 돌리기 보다는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드리고 서로가 타협하는 사회적 치유과정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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