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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고 풍부한 삶을 위한 안내서

단국의대 1학년 유우선
발행날짜: 2024-12-23 05:00:00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1학년 유우선
투비닥터 편집팀

"어딘가에도 썼지만, '자신에게 전부인 하나를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당해내질 못한다."

위의 문장은 신형철 문학 평론가가 작성한 평론의 일부이다. 나는 종종 이 문장을 떠올리곤 하는데, 아마도 이 문장이 '주인공'의 소양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치명적인 매력으로 거대한 서사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들은 명확한 공통점을 하나 가지고 있다.

주인공은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단 한 가지, 그러니까 강한 '신념'에 따라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하고,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자신이 살고 싶은 세계를 온전히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이는 주인공의 특권이며, 신념을 따르는 삶이 위대한 이유이다.

그러나 내가 이 글에서 진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 위대함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선뜻 자신의 것으로 취하지는 못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주인공의 삶을 타인의 전유물로만 인식하는 것일까? 어째서 우리는 스스로를 엑스트라로 주저 앉힐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 질문들을 해결하기 위한 안내자로 이 글에 한 주인공을 등장시키려 한다. 신념을 따라 흘러가는 그의 삶은 자체로 위대하며 또 위험하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주인답지 않게 그는 놀랍도록 평범하고 수줍다. 이 모순적인 주인공의 궤적을 따라간 끝에서, 당신이 위에 제시된 질문을 뛰어넘는 답을 찾아낼 수 있길 바란다.

위대하고 위험한 지시등을 따라

우리가 만날 안내자는 존 윌리엄스 작가의 소설 <스토너>의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이다. 이 작품은 윌리엄 스토너의 전 생애를 무심한 필체로 담아내고 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스토너는 농업을 공부하려 대학에 가지만, 영문학의 매력에 빠져 영문학 교수로 진로를 변경한다.

교수가 된 스토너는 타인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천천히 인생을 흘려보낸다. 작품은 조용한 스토너의 성품처럼 고요하게 시작되어, 임종 직전 스토너의 회고와 함께 또 고요히 끝을 맺는다.

작품을 읽는 내내 우리는 스토너와 함께 그의 인생에 들어온 크고 작은 선택에 직면한다. 스토너는 부모님의 기대처럼 농부가 될 것인지, 자신이 원하는 영문학 공부를 위해 대학에 남을지 선택해야 한다. 또 전쟁이 발발했을 때 모두가 당연시하는 입대를 할 것인지, 학교에 남아 학문의 길을 지킬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이렇게 선택의 기로는 늘 선지도 그에 따르는 기회비용도 다양하나, '윌리엄 스토너'라는 인물에 대해 점점 더 알아갈수록 우리는 쉽게 그가 어느 방향으로 향할지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주인공답게 너무나 명확한 '신념'을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는 영문학에 대한 자신만의 진지한 프라이드와 확고한 열정이 있다.

스토너는 영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가업을 잇는 것을 포기하고 학교에 남는다. 또 그는 국가와 인간에 대한 헌신은 대학에서 교육의 도를 지키는 것이라는 판단 하에 군대에 가지 않고 영문학 연구에 전념한다.

스토너는 때로 주저하고, 때로 타인이나 본인의 내면과 고통스럽게 갈등하지만, 결국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일관되게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그러한 스토너의 면모는 작품의 절정에 해당하는 갈등 상황에서 빛을 발한다.

중년의 교수가 된 스토너는 자신의 문학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 '워커'의 발표에 낙제점을 준다. 그의 발표는 문학에 대한 어떠한 고민도 묻어나지 않은 궤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커는 학장 '로맥스'에게 총애를 받는 학생이었고, 로맥스는 스토너에게 워커의 장래를 위해 낙제점을 거두라고 요구한다.

스토너는 고민 끝에 결국 워커의 발표는 낙제점 외의 다른 점수를 줄 수 없다는 결단을 내린다. 이에 앙심을 품은 로맥스가 스토너의 수업과 교수 승진에 불이익을 주어도, 동료 교수들과 학생들이 그의 문학적 소신에 의구심을 가져도,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흔들림 없이 영문학 수업에 매진한다. 그 모습에, 우리는 이 고독하고 답답한 교수 스토너를 주인공으로 인정하게 된다.

신념을 가지고 주저 없이 이를 따르는 것은 우리 삶을 의미로 가득 채운다. 모든 순간 내가 옳다고 믿는 선택을 하고, 그로 인해 형성되는 세상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자신을 다른 사람의 세계에서 한 걸음 멀어지게 할 수도 있고, 스스로 포기한 선택지가 이후 진리로 밝혀질 수도 있다.

마치 스토너가 워커에게 낙제점을 거두지 않음으로써 사회적 불이익을 받고, 그러한 결단이 학문적으로 적합했는지 확신조차 얻지 못한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신념을 따르는 이들을 위대하다 칭송하지만, 우리 스스로의 삶에서는 신념을 따르기보다는 두려움에 타협하는 것이다. 신념이라는 지시등은 근사하게 길을 밝혀주지만 동시에 고통스러울 정도로 눈 따갑게 번쩍이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이지만 누구보다 풍부한 삶을 살아가는

이제 당신은 기대할지도 모르겠다. 스토너가 주인공답게, 이러한 외부의 핍박과 내면의 갈등을 어떤 식으로 멋지게 극복했는지. 그렇다면 나와 스토너는 당신에게 실망밖에 안길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이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스토너는 그냥 살아간다. 계속 핍박받고, 실패하면서. 스토너 스스로도 임종 직전에 씁쓸하게 자신의 삶을 평가한다.

"그는 냉혹한 눈으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자신의 인생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작품의 담담한 묘사처럼 '윌리엄 스토너'는 특징 없는 생김새의 그저 그런 문학 교수이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에만 몰두하고, 교수 직책에 모자라지 않게끔만 임하며, 아내에게도 딸에게도 데면데면한 가족의 일원으로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당신이 실망한 바로 그 지점, 평범하기 짝이 없는 바로 그 미지근한 온도가 내가 스토너를 우리의 안내자로 선택한 이유이다.

스토너도 신념을 따르는 것을 두려워한다. 로맥스가 안긴 불이익으로 인해 줄어든 수입이 사랑하는 딸을 키우는 데에 걸림돌이 되자 괴로워하고, 워커와의 갈등에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 틀렸을까, 자신의 처신이 적절하지 않은 것일까, 끝없이 고민한다. 그러나 스토너는 끈질기게 맞부딪힌다.

기초 문법 수업 여러 개를 맡아 부족한 월급을 충당하고, 더 많은 공부와 재고를 통해 내린 자신의 결론이 최선이라 확신하자 뒤돌아보지 않는다. 스토너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위대한 삶을 살 수 있는지, 그 간단한 논리를 확인한다.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신념을 지킬 수 있는 타개책을 마련하고, 끊임없는 고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갈고 닦아 타인에게도, 본인에게도 설득력을 갖출 수 있는 신념의 근거와 힘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렇게 미지근하되 끈질긴 점도의 삶을 살아가며, 독자에게 위대한 삶의 문을 여는 열쇠를 건네는 스토너를 어떻게 주인공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스토너>는 출간 직후에는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수십 년 뒤 한 출판사 편집자가 헌책방 주인에게 추천을 받아야 재발행 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 당시 <스토너>는 "어떤 의미에서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다른 누구 못지않게 풍부한 삶을 살아가는 당신에게"라는 문구와 함께 재발행된다. 꼭 스토너가 말하는 것 같다. 풍부하다거나 위대하다는 말에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열정을 따라 사는 것은 당신도 할 수 있다며. 특유의 고요한 어투로.

펜을 넘겨드립니다

여기까지, 스토너의 안내는 끝이 났다. 당신은 이제 알고 있다. 신념은 두렵지만 아주 남의 것만은 아니며, 벅찰 수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어렵지만도 않다는 것을. 평범한 당신에게서 올곧은 마음이 나오지 못한다고 의심하지 말고, 공부하고 고민하여 강한 신념을 마련하자.

위대한 삶은 대단한 사건에서 나온다 단정하지 말고, 가까이에 있는 사소한 선택에서부터 스스로 옳다 생각하는 선지를 따르자. 당신의 주인공이 되는 당신이 이끄는 서사는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스토너'라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쓰던 내 손의 펜을 당신에게 넘겨본다. 당신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어떤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싶은가? 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딘가에서 마주할 당신의 이야기를 기대하며, 나도 이제는 또 다른 펜을 꺼내 들었다. 한편으론 평범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위대한 나만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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