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타임즈=문성호 기자]식품의약품안전처가 위고비·마운자로 등 GLP-1 계열 비만치료제를 '오·남용우려의약품'으로 지정하려는 고시 개정안의 행정예고를 마감했으나, 최종 확정 공고를 내지 못한 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29일 제약업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식약처는 지난달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와 마운자로(터제파타이드)의 오·남용우려의약품 지정 고시 개정안에 대한 의견수렴 절차를 마쳤으나 한 달이 지난 현재까지도 개정안을 확정 짓지 못하고 있다.
행정예고 기간 동안 접수된 임상 현장과 제약업계의 반대 의견에 더해 최근 고시 재검토를 요구하는 청원까지 제기되면서,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이하 규개위) 정식 심사를 통해 안건을 엄격히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와 제약업계 역시 비만 치료제의 무분별한 남용을 막자는 정책 취지 자체에는 동의하는 분위기다. 다만, 새로운 행정 규제를 신설할 때에는 그 수단이 실제 정책 목표 달성에 효과적인지, 치료가 꼭 필요한 환자의 접근성을 침해하지 않는지 '행정규제기본법'에 따른 규제합리화 관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개위 심사서 팩트 따져야"
의료계와 제약계가 규개위 차원의 정밀 심사 및 재검토를 요구하는 첫 번째 이유는 식약처가 제시한 규제 수단의 '실효성 부재'와 '근거 부족'이다.
식약처 개정안의 골자는 의약분업 예외지역 약국에서의 처방전 없는 판매 금지와 제품 용기 및 포장에 '오·남용우려의약품' 문구를 의무적으로 부착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현장 데이터는 이러한 규제 수단이 오남용 차단에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노보노디스크제약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국 2만 5천여 개 약국 중 예외지역에서 위고비를 판매한 약국은 93곳(0.36%)에 불과했다.
전체 비만약 오남용 시장에서 예외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극히 미비한 만큼, 예외지역 판매 제한이 오남용 차단의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제품 포장에 경고 문구를 새기는 방안 역시 실효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식약처 스스로도 지난 4월 열린 중앙약사심의위원회 회의에서 "오·남용우려의약품 표시만으로 의사의 처방 변화를 보장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정작 오남용의 주된 통로인 비대면 진료의 무분별한 비급여 처방이나 온라인 불법 유통·해외 직구 문제는 방치한 채, 행정 편의적인 '표시 규제'에만 의존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글로벌 규제 기준(Global Standard)과의 불일치도 규개위 심사 시 주요 쟁점으로 다뤄져야 할 대목이다. 기존 지정 품목인 단백동화 스테로이드 등은 심각한 의존성과 위해성을 유발하는 반면, GLP-1 계열은 마약류 식욕억제제와 달리 약물학적 의존성이 없으며 임상적 유용성이 검증된 제제다.
마운자로 개발사인 한국릴리 측은 "미국 FDA, 유럽 EMA, 일본 PMDA, 호주 TGA 등 해외 주요 선진 규제 기관 중 인크레틴 기반 비만치료제를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규정해 별도 관리하는 사례는 없다"고 꼬집었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2025년 GLP-1 계열 의약품을 필수의약품목록(EML)에 등재하며 만성질환 치료제로서의 가치를 인정한 만큼, 국내 식약처만의 과도한 단독 규제 여부를 정밀히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환자 낙인·치료 위축' 부작용 우려
이번 지정안이 가져올 환자 피해와 치료 위축 등 사회적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크다.
정식 처방 경로의 문턱만 높아질 경우, 미용 목적의 투약자들이 해외 직구나 온라인 불법 암시장으로 내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어서다.
행정규제기본법 제5조는 규제를 신설할 때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하며, 동일한 정책 목표를 더 적은 사회적 비용으로 달성할 수 있는 대안을 먼저 검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장 전문가들 역시 단순 지정 규제 대신 ▲전문가 협의체를 통한 적정 처방 가이드라인 마련, ▲온라인 불법 유통·광고 단속 강화, ▲일본 사례와 같은 BMI·체중 변화 정밀 보고 시스템 구축 등 실질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김성래 대한당뇨병학회 이사장(부천성모병원 내분비내과) 역시 식약처의 지정안이 실효성 낮은 '낙인찍기' 행정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남용 차단이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실질적인 유통·처방 관리 체계 없이 표시 의무만 부과하는 방식은 정당한 환자의 치료 기회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구체적으로 김 이사장은 해외 선진국의 관리 사례를 예로 들며 보건 당국의 실질적인 행정 시스템 구축을 촉구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비만 치료제 처방 시 환자의 BMI와 체중 변화 등 임상 데이터를 보고하도록 하는 정밀 관리 및 추적 시스템을 통해 오남용을 통제하고 있다"며 "단순 경고 표시 의무화에 의존하기보다, 처방 단계에서부터 오남용을 차단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관리 체계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작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에게 불필요한 불안감이나 심리적 문턱을 높이는 방식은 지양해야 한다"며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용해 실효적인 관리 대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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