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조사 과정에서 자료 제출을 명령하는 보건복지부. 이를 어기면 1년의 업무정지가 내려진다.
요양기관은 복지부가 주문하는 자료를 "작성한 적이 없기 때문에 낼 수 없었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억울함을 호소한다.
정부 입장에서는 자료를 내지 않는 요양기관의 말을 믿을 만한 증거가 없어 재판부의 결정만 기다린다. 그런데 재판부마다 상반된 결론을 내리고 있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제13부(재판장 반정우)는 최근 경상남도 산청군 A약국 곽 모 약사가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요양기관 및 의료급여기관 업무정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복지부는 현지조사 과정에서 조제기록부, 본인부담금 수납 대장(약제비 계산서), 접수 대장, 비급여 항목 및 수진자별 비급여 징수 대장, 의약품 및 진료용 재료 구입에 관한 사유 등에 대한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그러나 곽 약사는 조제기록부 일부만 제출하고 다른 자료는 일체 제출하지 않았다. 복지부가 명령한 자료는 애초부터 작성한 적이 없다고 했다.
복지부는 "요양급여 또는 의료급여에 관한 서류 제출명령을 위반했다"며 업무정지 1년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재판부는 복지부 대신 곽 약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의료급여법과 건강보험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서류 제출 명령 위반 행위는 제출 명령 대상 서류가 존재할 때만 성립한다. 곽 씨가 조제기록부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 서류를 작성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확장 해석 또는 유추해석을 통해 위험성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금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불과 한 달 전, 서울행정법원 제12부는 똑같은 의약분업 예외지역 약국의 현지조사 자료 미제출 사건에 대해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기록이 없다", "작성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현지조사 자료를 내지 않은 약국에 대해 패소 판결을 내린 것.
당시 재판부는 자료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서류 제출 명령 위반이라고 봐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복지부가 요양기관에게 관계 서류를 못 받으면 요양급여 적정성 여부에 대한 판단 근거자료를 확보하지 못해 사후 통제 및 감독이 불가능하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법 조항에 대해 상반된 판결이 나오자 복지부도 혼란스럽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재판부마다 결론이 다르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1심이기 때문에 상급심으로 가서 결론이 하나로 모아지면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법원도 요양기관이 자료 제출 의무를 회피하는 상황을 대비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제안을 했다.
서울행법 제13부 재판부는 "요양기관이 고의적으로 서류를 작성하지 않을 위험성이 있다. 그럼에도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실효적인 법적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국가나 행정청은 입법을 통해 위험성을 제거하는 법률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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