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호기심이 많다. 특히 학문적으로 호기심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공부에 대한 욕심도 많다. 공부를 아주 많이 했다. 지금도 여전히 책을 손에서 떼어본 적이 없다. 항상 책을 들고 다닌다.
국립의대를 다니고, 국가 병원에서 수련받았고 서울대에서 불임 전임의를 하며 석사, 박사를 땄다. 대체의학을 공부하면서 수지침 자격증도 따고, 성학(Sexology)을 독학하며, 지금은 영양학도 공부하고 있다.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하면서 의사로서 자질을 높이면 환자는 당연히 나를 신뢰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점이 당혹스러웠다. 개원초에는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반대 입장이 되어서 생각을 해봤다.
'왜 처음 방문한 환자가 나를 전적으로 믿겠는가? 자기의 목숨이 달린 일이기도 한데, 당연히 신중하게 행동해야겠지!'
개원 초창기에는 그 점이 너무나 속상하고 화가 났고, 또 고민이었다.
'내가 얼마나 똑똑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완벽을 추구하는데 왜 나를 못 믿지?'라는 생각이 머리 한쪽에 자리잡고 있었다.
개원 초기, 초음파로 자궁근종이나 난소의 물혹을 발견하면 진료의뢰서나 차트복사를 요구하는 사람이 많았다. 수술을 잘 할 수 있다고 해도 절대 믿지 않았다. 분만할 때가 다 되면 큰 산부인과로 진료의뢰서를 끊어서 가 버리는 일도 많았다. 젊어 보이니까 경험이 없어 보였을 것이고, 그래서 신뢰를 못 하는 것이었다.
환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 처음으로 한 일은 의학박사를 따는 일이었고, 그 다음은 병원 규모를 확장하는 것이었다. 병원이 커지니까 "제왕절개를 할 줄 아느냐? 자궁적출술을 할 줄 아느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나를 무시하는 말이나 행동도 조금씩 줄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나에 대한 신뢰가 완벽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성학(Sexology)을 공부하면서 케이블 TV에 나가 성교육을 하고, 여성잡지에 기고를 하고, 토크쇼에 패널로 나갔다. 얼굴이 알려지니 환자들이 나를 더 많이 신뢰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공부만 하면 되는 게 아니었다. 나를 알리기 위한 작업을 해야했다. 신뢰를 받기까지 참으로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고 힘든 작업이었다.
의사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환자는 치료가 된다. 의사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환자는 '이 의사에게 나를 맡겨도 될까? 다른 병원에 가야 할까?'를 계속 생각하면서 진료에 집중을 하지 못한다.
나 스스로는 어떤 의사하고 비교해도 실력에서 조금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고민하고 노력하는데 환자는 믿어주지 않는다. 심지어 내가 자신이 없으면 당연히 큰 병원이나 나보다 더 진료를 잘 하는 의사나 병원에 전원을 보내는 데도 환자는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
'국립대이긴 하지만 지방의대를 졸업했고, 경기도 변두리에 개업을 하고, 여자의사이고, 젊으니까 경험이 없을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나를 관찰하던 환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큰 사고가 없고, 개원 10년이 지나서야 방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고가 없는 것을 5년간 지켜본 후에야 와서 수술을 하는 환자도 있었다.
다른 병원에서 자궁근종이 있어서 자궁적출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도 시치미를 뚝 떼고, 그냥 진찰하러 왔다고 얘기하고 내가 똑같은 얘기를 하는지 아닌지 테스트 하는 환자도 있다.
처음에는 그런 환자의 행동이 서운했지만 반대로 생각 해 보니 그렇지도 않은 행도들이었다. 나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맡길 의사를 신중하게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환자의 행동을 서운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환자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당연히 의료사고가 안 나게 신중하게 진료 하고, 1%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깔끔하게 진료해야 한다. 수술 실패율은 0%, 수술 만족도를 100%로 만들기 위해 노력 했다. 그런 노력을 하는데도 나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 진료의뢰서를 떼 가는 환자가 있으면 서운해 하지 않고, 그 환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한 나의 말투와 행동을 점검했다.
여전히 환자들은 종합병원을 선호한다. 특히 수술을 해야 할 경우, 많은 돈을 써야 할 경우는 큰 병원에 가려고 한다.
어떻게 하면 환자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신뢰를 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하거나 체계를 만드는 것까지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개원한지 얼마 안 됐는데 바로 환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의원이 큰 병원 따라잡기는 무리…규모의 한계 뛰어넘으려면?
개인 의원은 규모로는 절대 종합병원이나 전문병원을 따라 잡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규모의 한계를 뛰어넘을 것인가?
개원하기 전 의사의 경력과 마케팅이 환자의 신뢰도 향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나는 규모의 한계를 뛰어 넘기 위해 책을 쓰고, 번역하고, 사단법인을 만들었다. 지역사회에서 활동 하고, 주위에 교육이 있으면 여러 종류의 교육을 했다. 팟캐스트 팟빵을 통해 '고수들의 성 아카데미', '닥터박의 행복한 성'을 운영하고 있다. 여러 채널로 환자의 신뢰도를 얻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겠지만, 환자가 그 의사를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여러 채널로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찾아온 환자에게는 신뢰 받을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아무리 내가 실력있다고 알려도 환자가 찾아와 주지 않으면 그동안의 노력이 소용 없을테니 말이다.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게 되면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만, 환자에게 신뢰를 얻지 못하면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지 않는다.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면 눈에 힘이 빠지지만,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지 못하면 눈에 힘이 팍 들어가 있으면서 무슨 말에든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 그런 상태에서는 치료도 안 된다.
그런데 절대로 사람을 믿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도 분명 있다. 그런 사람은 어디를 가도 사람을 믿지 않는다. 이상한 점은 그런 사람은 수술을 해도 상처가 안 좋고, 똑같은 약을 줘도 잘 안 낫고, 무엇을 해도 그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잘 생긴다. 그런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잘 생각해 보고 선택을 잘 해야 한다. 개원 한 지 얼마 안 된 초보 의사는 그런 사람은 피하는 것이 오히려 좋을 수 있다.
사람에게 신뢰를 얻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고 상당히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의사를 평생 해야 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뢰를 얻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일단 의사가 환자에게 신뢰를 받은 후에는 평생 그 의사를 믿고 환자들이 올 것이고, 그런 환자 수가 많은 것이 바로 그 의사의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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