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말, 경주에서는 올해로 35번째를 맞이하는 의학교육학술대회가 열렸다. 평소 의학교육에 관심이 있어 꾸준히 참석하던 중, 올해는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에서 한 세션을 맡아 진행을 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알고 보니 학회측에서 몇 해 전부터 이러한 제안을 계속 해주셨지만 여력이 되지 않아 번번이 고사하였다고 하는데, 매번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처음으로 준비를 해보기로 하였다. 사실 이번 학회의 화두는 새 평가인증기준인 ASK2019였다. 공교롭게도 대전협 세션이 ASK2019 세션과 같은 시간대에 배정을 받아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생각보다 많은 분이 참석하셨고, 특히 관련 기관을 이끌고 계신 여러 원로 선생님들께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관심을 보여주셨다.
올해 학회의 큰 주제는 ‘창의와 가치지향 교육’이었다. 이를 어떻게든 엮어보기 위해 고민을 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 인턴과 레지던트를 아우르는 졸업 후 교육(GME)에 대해 대전협이 가진 짧은 생각을 나누는 자리로 꾸며보았다. 전공의 교육과정을 살피다 보면 창의나 가치를 발견하지 않을까 하는 뜻에서였지만 안타깝게도 현재의 부족함을 논하는 선에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에서 이루어지는 기본의학교육(BME)의 목표는 의료전달체계의 버팀목이 될 지역사회 내 일차진료의 양성이다. 평균적인 환자들에게 일반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의사에까지 창의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겠지만, 의사라면 누구나 지녀야 할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잠잠해지나 싶으면 들려오는 의료계 내의 각종 사건 사고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작 의학적인 문제가 쟁점인 경우는 거의 없다는 점은 이러한 가치의 가치, 이른바 ‘메타가치’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 의학교육에서도 이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는 점이 매우 반갑지만, BME에서의 교육이 그 이후, 특히 GME로 전혀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최근 전공의들의 교육수련 현장에서 극히 드문 일부의 자칭 ‘교육자’들로부터 욕설을 듣고 매를 맞고 있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려오고 있다. 대전협은 이유를 불문하고 어떠한 형태의 폭언이나 폭행에 대해서도 매우 강경한 태도지만, 이를 두고 또 다른 극히 드문 일부에서는 그나마 후배 교육에 관심이 있으니 그러는 것일 텐데 굳이 스승을 그렇게 망신주어야 하냐는 질책이 있다. 피가 거꾸로 솟는다.
비단 스승의 탈을 쓴 자들 뿐만의 일이 아니다. 얼마 전, 한 전공의가 간호사 탈의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였다가 적발되었다. 대전협은 해당 회원을 즉시 대한의사협회 중앙윤리위원회에 제소하였고, 스승들로 하여금 잘못된 우리 동료를 엄벌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엇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아무 소식이 없다.
새롭게 들려온 폭행 소식에 대해 이번에는 각 지역의사회에서 야심차게 추진하는 전문가평가제에 의지해보고자 서울시의사회에 즉시 제보하였다. 과연 달라진 것이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와중에 일각에서는 이러한 ‘내부 상황’을 무분별하게 제보하지 말라는 요청도 있다. 부끄러움은 남아있다는 뜻일까.
기술로서의 의료 측면에서 우리는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학문으로서의 의학, 특히 교육의 측면에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유일한 의학교육 전문 학회인 의학교육학술대회는 지나치게 BME에 치중되어있고 BME-GME-CME의 연계에 관해서는 아직 부족함이 많아 이곳에서의 생산적인 논의가 실제 의료와 의학이 행해지는 현장으로 이어지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느낌을 매번 받곤 한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면을 찾아본다면 올바른 가치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BME를 통해 바르게 익혀 GME 가운데 철저히 깨닫고 수련받도록 이어줄 역할이 아직 우리 젊은 의사들에게 남겨져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다만 우리가 무가치함에 오랜 시간 익숙해진 나머지 메타가치의 소중함을 시나브로 잃고 막상 모든 것이 준비되었을 때에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마저 사라짐을 우려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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