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에서 의사협회는 공식적으로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였다. 그러나 대선에서 의사협회가 지지한 한나라당 후보가 낙선하자 일부 의사들은 한쪽 후보만 지지한 의사협회의 대선 전략에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하였다.
당시에 의사협회의 정책이사로 대선 공약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작업을 하였던 나는 선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번 대선이 끝나면 그 결과에 따라 의사들이 받게 될 상처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였다. 그중에 하나는 의사협회가 지지한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여 대통령이 된다 해도 의사들이 바라는 의료 제도를 펼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지지한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한다면 의사들이 받게 될 상실감이었다. 후자의 경우는 대선 전략에서 당선 가능 후보를 잘못 선택하였다는 선거대책에 관한 비난으로 받게 될 개인적인 상처도 우려하였었다.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으니 의사들의 실망감은 선거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바로 낙담으로 마무리 되어버렸지만 만약에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하더라도 불합리한 의료제도들이 변함없이 계속 되고 의사들의 실망감은 점점 절망감이 되면서 대선 전략팀에게 무엇을 바라고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였는지 두고두고 원망하였을 것이다.
다시 대선 전으로 돌아가 의사협회가 양측 대선후보를 골고루 반씩 지원하는 양다리 걸치기를 하였거나 아니면 극단적으로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를 전적으로 지지하여 대선에서 승리하였다면 결과적으로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의사협회에서 대선 지지후보를 선정하면서 가장 중요한 평가기준이 된 현행 의약분업에 대한 각 후보들의 대선공약은 정책적으로 결정 된 것이 아니라 정략적으로 결정 되어 있었다. 민주당이 만든 국민의 정부가 시작한 의약분업 제도를 민주당 후보인 노무현 후보가 부인할 수는 없는 처지였고 또 그와 경쟁하는 한나라당 후보인 이회창 후보는 국민의 정부가 펼친 여러 실정을 파헤치면서 많은 국민들이 불편해 하는 의약분업을 선거에 주요 이슈로 삼을 수밖에 없었기에 대선공약에서 의약분업 만큼 뚜렷한 대비된 정책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런 정략적인 공약 뒤로는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나 현행 의약분업의 문제점을 해결할 좋은 방안이나 뚜렷한 목표를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였기에 대선이 끝나서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던 대선 이후에 의료 환경은 별로 달라질게 없는 상태였다.
언젠가 우리사회를 시민운동가들이 주도하면서 이 사회에는 의사들 같은 전문집단으로부터 많이 빼앗는 것만큼 국민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간다는 이상한 함수가 사회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생겨났다. 이런 함수에 의하여 국민들 사이에 의사집단은 소수의 반사회적인 집단이라고 시민정서에 불식간에 고착되어 있다.
현행의약분업이 비록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어떤 후보도 선뜻 의사들이 제시한 의약분업 해결방안을 받아드려 문제점을 개선할 용기도 없거니와 그리할 의지도 없는 후보들 간의 대선에서 지지후보를 선정한다는 것은 선거에 이기고도 자칫 의사들의 일과성 한풀이 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 나는 많은 걱정을 하였다.
의사를 폄하한 신문기사가 의사를 옹호한 신문기사보다 막연하게 정직하고 올바른 기사라고 인정되는 사회에서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어떤 후보를 지지해본들 선거가 끝나고까지 의사들과 대화를 계속 하는 정치인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인들에게 의사들은 단지 표가 필요하고 그리고 자금이 필요할 때, 만날 필요를 느끼게 하는 것이지 선거가 아니라면 별로 가까이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의사들은 이런 본질적인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선거든지 한낱 들러리에 불과하고 선거에서 지지후보가 승리를 하던 패배를 하던 그 결과에 따른 혜택에는 별로 차이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정치세력화를 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정치란 선거가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합리적인 기준으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맥이나 안면 그리고 로비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에 선거를 통해 인맥과 안면은 계속 쌓아갈 필요가 있고 의사들의 정서를 대변할 인사들이 정계에 진출하여 사회적인 역량을 쌓아야할 필요는 절실하기 때문에 정치세력화는 해야 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의사들의 정치세력화는 필요에 의하여 한다기보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판단이다.
2004년 총선은 4월에 치러진다.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 등 정당 소속 국회의원 후보들이나 무소속 후보들은 해가 바뀌면 본격적인 선거태세로 들어갈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의사협회도 총선전략을 연구검토 해야 할 것이다. 지난 경험을 비추어보면 아마 총선전략에 대한 Task force가 만들어 질것으로 예상되고 각 당의 선거대책본부 관계자들과 접촉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사협회의 총선 전략이 바로 표로 이어질 것인지는 유권자 개인의 판단이기에 간섭할 수 없지만 의사협회의 총선 전략이 의사 유권자들의 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의사협회가 총선 전략을 잘 수립해 주었으면 하고 의사의 한사람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다.
대선과 총선은 전략 수립에서 약간 다른 점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행정부의 수반을 선출하는 대선은 의료제도나 건강보험제도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을 끼치고 의료 환경 자체가 변화할 변수가 되니 입법부 의원들을 선출하는 총선과는 의미가 조금 다를 수 있다.
참여정부의 임기는 앞으로 무려 4년이나 남았다. 4년 동안이나 행정을 좌우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압도적인 의석수를 확보한다 해도 몇 석 밖에 확보하지 못한 열린우리당이 의료제도 개선에는 영향력이 더 클지도 모른다.
물론 법과 규칙을 수립하는 국회가 행정제도에 미치는 영향력도 무시 못 하지만 의석수가 많다고 반드시 행정에 영향력이 많다는 것과는 차이가 분명히 있다고 본다. 이 점은 의사협회의 총선전략 수립에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속된 말로 정답을 모르고 하나를 골라서 선택하는 대선 전략 결정보다 해답은 대충 알면서도 그 답을 선택하기는 명분상 어렵다는 점이 총선전략 수립을 더욱 복잡하고 난감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의사협회의 총선 전략 Task force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던 의사들은 그 결정에 따를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의사들이 지지한 후보나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한다고 당장 의료 환경이 달라질 것이 없다는 현실을 감안하여 의사들은 선거 결과에 대해 일희일비하면 안 될 것이다. 선거라는 과정은 하나의 여론을 만들어 가는 것이고 우리의 입장을 밝혀나가는 하나의 장이 될 뿐이다.
의사 같은 전문 집단은 대선이건 총선이건 정치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의사들이 정치에 무관심 할 수 없을 정도로 이 사회는 의사들을 부적절한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고 이런 사회분위기로 인해 의사들은 정치세력화라는 편법으로 이 난국을 타개해 보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의사협회 총선 전략팀에 바라고 싶은 것은 어떤 결정을 하던 그 결정의 기준에 첫째는 환자들인 국민과 의사가 상생하는 기준을 마련하여 각 당의 공약들을 평가를 해주기 바란다는 것이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수 없듯이 의사들은 환자들과 떨어져서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이익단체의 입장이라도 사회적인 정서를 무시하고 우리들만을 위한 정책을 수립한다면 그런 정책은 선거가 끝나면서 바로 그 생명력을 다하기 때문에 효과가 없기 때문이다.
시민단체가 시민들이 원하는 운동 혹은 시민들을 위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하고 싶은 운동 그리고 자신들을 위한 운동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여러 번 보아왔다. 그런 어리석음을 전문가인 의사들마저 스스로 범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환자들을 위한 목소리가 전무한 우리나라 의료제도 하에서 환자들은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더욱더 힘들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의사의 한사람으로 대선이던 총선이던 선거를 치를 때마다 의사협회의 선거 전략에 의해 우리나라 의료가 한걸음 더 발전하고 그 혜택이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좀더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의사들의 총선 전략에 관한 의견을 밝혀보았다. 위의 의견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으로 의사협회의 총선 전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글임을 읽어주신 분들은 혜량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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