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대면 분위기를 타고 원격진료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혈압에 이어 심전도 측정 앱 허가를 얻으면서 기술적으로는 이미 원격진료가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코로나19 이후에도 비대면 기조가 '뉴노멀'로 자리잡을 경우 원격진료의 대중화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의료계 안팎에서 흘러나온다. 원격진료라는 화두를 꺼내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던 4~5년 전 분위기와 확연히 달라진 것.
관련 학회들의 전망을 통해 헬스케어 웨어러블 기기의 확산과 이를 통한 활용 방안 등에 대해 점검했다.
▲헬스케어 왕국 건설 노리는 삼성전자
21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삼성전자의 심전도(Electrocardiogram, ECG) 측정 앱을 허가했다. 심전도 측정 센서가 있는 스마트 워치에 해당 앱을 설치하면 스마트 워치가 심전도 기기로 활용될 수 있게 된다.
간단한 어플이지만 의료용 장치(Software as a Medical Device)로 허가를 얻은 만큼 기기의 진단 정확성은 의료기기에 준한다. 심전도 측정 앱은 갤럭시 워치 액티브2의 센서 기술을 활용해 심장의 전기 활동을 분석해 동리듬과 심방 세동을 측정하고 분석해 표시해 준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번 허가가 곧 의료용으로 사용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며 "다만 의료기기에 준하는 만큼의 정밀성은 확보했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비대면 기조를 통해 원격진료 활성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며 "이런 흐름이라면 의료에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나오지 않을까 한다"고 설명했다.
이미 애플사의 애플워치는 해외에서 심전도 측정 기능을 제공해왔다. 삼성전자는 이번 심전도 앱의 허가 이전인 4월 혈압 측정 앱에 대한 허가도 획득한 바 있는데 국내에서 스마트 워치를 활용한 혈압 및 심전도 측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에선 아직 이런 스마트 기기를 활용한 측정치로 진단 및 처방이 불가능하다. 다만 기술적으로는 현재 완성단계라는 게 업계의 판단.
식약처 관계자는 "삼성전자를 예로 들면 휴대폰 카메라를 통해 제품을 보면서 AS 여부 및 제품 상태 진단, 확인 등의 원격상담을 진행하고 있다"며 "이를 의료에 대입해 보면 휴대폰 카메라와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원격진료를 행하는 것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적으로는 원격진료가 이미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봐야 한다"며 "해외 기조에 비춰보면 원격진료의 도입은 사회적 합의만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삼성 헬스 모니터'를 통한 헬스케어 산업으로의 확장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헬스 관련 기기의 미국 FDA 허가 신청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부터 원격의료가 허용된 미국의 경우 스마트 헬스케어 기기의 가능성을 타진해볼 좋은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연속 측정이 진단의 미래…학회 시선은 '긍정론'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한 원격진료에 대한 의료계 입장은 극명하게 엇갈리지만, 최근 긍정론도 힘을 얻고 있다. 활용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환자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것.
정영훈 창원경상대병원 심혈관센터장(순환기내과)은 "5년 전엔 스마트폰 카메라의 낮은 해상도 및 전송 오류 가능성, 측정치의 신뢰도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불거졌다"며 "지금은 과거와 달리 기술적인 완성도가 크게 올라갔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의 혈압 및 심전도 기능이 식약처 허가를 얻었다는 것은 그만큼 측정 신뢰도를 확보했다는 의미가 된다"며 "비대면 흐름에 따라 이런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기들이 비대면 진료로 확장되지 않을까 한다"고 예측했다.
그는 "물론 의료계의 반대가 심하겠지만 큰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고 본다"며 "특히 학회에서도 연속 측정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어 환자 건강 관리 중요성 측면에서 웨어러블 기기의 대중화는 필연적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혈압과 혈당 측정에 있어서 지속적이고 주기적인 측정이 관리에 핵심으로 부각되고 있는 만큼 웨어러블 기기를 통한 '연속 측정'은 현재 환자 관리에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정 센터장은 "환자가 병원에 오는 동안 혈압이 상승하기도 하고, 아무리 차분한 상황을 만들어줘도 병원에서 한번 재는 혈압은 정확한 측정치라 보기 어렵다"며 "혈당 역시 지속적인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 관리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연속 측정에 이런 웨어러블 기기가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일부 젊은 의사들은 CES(세계가전전시회)에 찾아갈 정도로 기술적 측면에서의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기 활용성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작년 미국당뇨병학회에서는 연속혈당모니터링(CGM) 기술과 혈당 관리의 상관성을 밝힌 리얼월드데이터를 처음으로 공개한 바 있다. 결과를 보면 최소한 3개월 이상 CGM 기술을 사용하면 CGM을 사용하지 않을 때보다 당화혈색소(HbA1c) 수치가 더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당뇨병환자들의 경우 하루 수 번에 걸쳐 자가 혈당 측정을 한다. 문제는 자가 혈당 측정 시기를 벗어나 고혈당, 저혈당이 발생하는 경우 적절한 대응이 어려워 자칫 응급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뇨병학회 관계자는 "자가 혈당 측정을 하는 당뇨환자 중 다수는 혈당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지속적이고 주기적인 혈당관리는 그 형식이 스마트 워치가 됐든, 의료기기가 됐든 환자에 기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땀으로 혈당을 측정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가까운 미래에 간단하게 혈당을 측정하는 웨어러블 기기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며 "개인적으로는 IT와 융합한 헬스케어 기술이 환자에게 혜택으로 작용한다면 막을 명분은 없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고혈압학회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혈압 측정 앱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커프를 팔에 두르거나 혈압계를 찾지 않는 수고가 없는 것만으로도 큰 진전으로 생각한다"며 "자신이 고혈압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나 되기 때문에 이런 간편한 기술이 보다 대중화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심방이 무질서하게 매우 빠르고 미세하게 떨리면서 불규칙한 맥박을 형성하는 심방 세동(AFib)은 흔한 부정맥 질환 중 하나지만, 많은 환자들이 무증상으로 본인의 상태를 알지 못한다.
자각하지 못한 심방 세동이 향후 혈전, 심부전, 뇌졸중 등을 포함한 합병증의 위험을 크게 증가시킨다는 점을 고려하면 환자들의 건강에 대한 자각 및 환기 차원에서 웨어러블 기기의 확산 및 이를 통한 진료의 긍정적 측면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터부시되던 원격진료 언급…"시대 변했다"
삼성전자라는 상징성 때문에 이번 심전도 앱 허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됐지만, 사실 의료계는 이미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한 원격진료 허용을 두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3월 휴이노의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의사-환자간 원격의료장치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유권해석으로 이를 허용한 것을 두고 의사협회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
휴이노의 심전도 장치는 환자가 원격지에 있는 의료진에게 자신의 심전도를 전송해 해석을 받는 원격진료 기기다.
현행 의료법상 웨어러블 기기를 통해 측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환자 상태에 따라 의사가 환자에게 내원을 안내하는 것에 불법 논란이 있었지만 복지부 유권해석으로 휴이노의 심전도 기기는 사실상 국내 첫 원격진료 기기가 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에 이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요양급여로 인정받은 만큼 웨어러블 기기 측정값을 진료에 활용할 '근거'가 생겼다. 현재 이 제품은 고려대 안암병원 등을 통해 임상시험이 진행중으로 5월말 파일럿 스터디를 끝내고 임상 결과를 도출할 계획이다. 비대면 기조를 타고 원격진료가 가속페달을 밟게 됐다는 뜻이다.
2013년 원격진료 허용 반대를 외치며 2만 여명의 의사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 정도로 원격진료는 의료계에서 금기시된 단어지만 최근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는 언급도 나온다.
과거 의사협회 임원으로 활동했던 A는 "과거엔 환자의 안전을 위해 원격진료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런 주장에 환자들이 과연 동의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며 "의료진의 입에서 원격진료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심심찮게 나오는 것도 변화된 분위기의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엔 원격진료 도입 주장을 하면 의료계에서 매장당하는 분위기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누그러진 것 같다"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IT와 헬스케어의 융합이라는 큰 흐름은 막을 수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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