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의료기기가 임상 현장에 보급되기 위해 넘어야 하는 두가지 산이 있다. 바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신의료기술평가다.
유효성과 안전성, 비용효과성을 인정받기 위한 필수적인 절차지만 유독 신의료기술평가 허들 앞에서 기업들은 모두 하나 같이 깊은 한숨만 내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허들을 넘지 못해 골머리를 썩고 있는 기업들은 진짜 '죽음의 계곡'이 신의료기술평가라고 입을 모은다. 얼마전 혁신 의료기기 기업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개선을 촉구하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부도 할 말이 있다. 혁신 기기들의 시장 진입을 위해 수 많은 트랙을 통해 자문과 지원을 하고 있지만 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지 않은 채 마음만 앞서 기회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의학계와 임상 현장도 마찬가지다. 실제 임상 현장에서 이를 검증하고 활용하는 입장에서 옥석의 차이가 너무 큰 만큼 필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일단 환자를 위해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의견이 교차한다.
이러한 가운데 그동안 단 한번도 신의료기술평가 허들을 넘지 못했던 의료 인공지능(AI)이 유예 제도를 통해 임상 현장에 들어오면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의료 AI로는 최초로 비급여를 활용해 리얼월드데이터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 혁신 의료기기 기업들이 이번 사례를 주목하고 있는 이유다.
그래서 메디칼타임즈는 이번 기회를 통해 신의료기술평가 제도 특히 평가 유예제도가 갖는 의미와 가능성,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 모인 대한중환자의학회 홍상범 부회장(서울아산병원)과 뷰노 이예하 대표이사,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신의료기술평가사업본부 신채민 본부장은 유예 제도가 새로운 기회라고 입을 모아 강조하며 정착을 위해 학계와 산업계, 정부가 모두 힘을 모아야 한다는데 공감했다.
의료 AI가 유예 제도를 통해 제도권으로 들어오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 유예 제도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의료계와 산업계, 정부가 생각하는 의미와 취지가 궁금하다.
신채민-유예 제도의 목적은 분명하다. 지금까지 신의료기술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면 기기와 기술을 임상에서 아예 활용할 수 있는 방법 자체가 없었던 만큼 전문가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안전성이 확보됐다고 인정되는 기기와 기술에 대해 유효성 근거가 미흡해도 비급여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것이다.
올해 유예 제도 개선안이 시행됐는데 예전에는 1년 정도에 머물렀던 기간을 2년으로 늘리고 250일간의 평가 기간까지 더해 약 3년까지 쓸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다. 말 그대로 시장에 선진입해 유효성을 쌓아가는 기회로 뷰노의 딥카스가 여기에 적용되는 케이스다.
이예하-사실 지금까지 의료기기 시장이 미국이나 유럽에서 근거를 쌓은 뒤 수입되는 형태라 신의료기술평가에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4차 산업 혁명과 맞물려 인공지능 등 혁신 기기가 국내에서 개발되고 제조되면서 한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임상적 근거를 쌓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돈이 있어야 투자를 하며 임상 근거를 쌓고 이를 기반으로 다시 돈을 버는데 시장에 내놓을 방법이 그 수레바퀴를 돌리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정부가 유예 제도를 만들어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기기들을 비급여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도록 해주면서 임상 현장에서는 신기술을 미리 사용해 볼 수 있는 기회가,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을 쌓으며 임상 근거를 쌓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충분히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홍상범-정부가 유효성에 대한 접근을 다르게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두고 싶다. 근거중심의학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사실 한계가 있는 부분도 있다. 중환자 영역이 대표적인 경우로 수많은 복잡한 상황들이 공존하는 만큼 지금까지 20년 동안 중환자를 돌본 나 조차도 어떤 것이 정확한 근거가 있다고 단정하기 쉽지 않다.
중환자실에서는 사람이 죽고 사는 순간들이 교차하는 만큼 리얼월드데이터를 쌓겠다는 시도 자체가 사치가 된다. 가능성을 믿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면 유효성 데이터가 조금 부족해도 가능성을 생각해 필드(임상)으로 내보내 주는 시도가 필요하다. 유예 제도를 통해 그러한 기회가 생겼다는 점에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신의료기술평가가 혁신 의료기기의 임상 진입에 가장 큰 허들이라는 지적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유예 제도가 과연 이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을까
홍상범-실제 임상 현장에 있는 의사로서 유예 제도는 매우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해외 학회에 나가보면 이 기기, 기술이 있으면 환자에게 정말 도움이 되겠다 싶은 것들이 많은데 우리나라에서 활용할 수 없어 답답해 하던 경험이 많다.
그런 부분에서 유예 제도는 이러한 벽과 허들을 일부 상충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딥카스 같은 경우도 임상시험을 통해 써봤지만 분명하게 환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기술들이 데이터가 없다고 임상 현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몇 년씩 서류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은 실제 임상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예하-분명하게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다. 사실 뷰노를 창립하고 AI를 개발하면서 가장 많은 고민을 했던 부분이 바로 건강보험 수가 체계에 들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건의료연구원에 고마운 부분이 많은데 신의료기술평가를 받기 위해 오랜 시간과 자원이 투입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줬다.
이번에 마침내 비급여로 임상에 진입한 딥카스의 경우도 개발 시점부터 임상 시험 단계까지 신의료기술평가 허들을 넘기 위해 필요한 부분들을 계속해서 끌어줬다. 이를 따라가며 유예 제도를 통해 마침내 시장에 진입하는데 성공했고 3년의 시간 동안 근거를 쌓을 기회를 가졌기 때문에 무난히 평가를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도 같은 길을 걷는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우리가 간 길을 못갈 이유가 없지 않나.
신채민-사실 많은 사람들이 보건의료연구원에서 신의료기술평가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평가 유예부터 혁신 의료 기술 평가, 제한적 의료기술 평가 등 굉장히 다양한 트랙을 운용하며 나아가 컨설팅 업무를 병행하고 있다. 아예 임상 시험 계획서부터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근거를 쌓도록 지원하는 루트도 있다.
많은 기업들이 허들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개발한 의료기기가 어느 트랙에 적합한지에 대한 검증없이 흔히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컨설팅만 믿고 덜컥 지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보건의료연구원의 문을 두드려 방향성을 꼭 잡아 나갔으면 한다. 유예 제도 뿐만이 아니라 급여권으로 들어갈 수 있는 수많은 트랙이 있는데 이를 활용하지 못하고 허들로만 느끼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사실 의료 AI는 신의료기술평가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딥카스가 유예 제도 혜택을 받으면서 반전이 일어났는데 이 부분을 가장 많이 궁금해 한다.
이예하-사실 의료 AI의 경우 의료 환경에서 기기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를 분명하게 정의한 뒤 개발에 들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딥카스 같은 경우 AI를 통해 심정지 위험도를 예측하는 기기로 결국 새로운 '행위'를 창출한 점을 인정받았다. 지금까지 AI들은 이 부분이 빠져있는 경우가 많았다. AI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역할'과 '행위'를 하는지다.
대부분 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은 간호사가 3번에서 4번 정도 간헐적으로 바이탈 사인을 체크한다. 그나마 중환자실은 전문의와 간호사들이 상주하지만 일반 병동은 의료진이 너무 많은 환자를 본다는 점에서 악화 위험을 감지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딥카스가 주목한 점은 여기에 있다. 분명하게 AI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믿었다. AI가 가장 잘 하는 것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것과 분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딥카스는 AI가 바이탈을 분석해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심정지 위험을 예측해 경고하는 과거에 없었던 '행위'를 만들어 낸 점을 인정받은 셈이다. 또한 일반 병동에서 정확하고 확실하게 심정지 위험을 감지해 의료진의 로딩과 오류를 줄일 수 있는 점을 좋게 평가받았다. 앞으로 AI를 어떻게 임상 현장에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홍상범-일단 우리나라 중환자실의 현실을 이야기해야 할 듯 하다. 코로나 사태 등으로 정부가 중환자실 병상을 크게 늘렸지만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던 이유는 병상을 늘리는 것은 쉽지만 그 곳에서 일하는 인력을 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의사와 간호사가 번아웃인 상황에 병상만 늘리면 그 곳을 누가 감당하겠나.
문제는 단기간에 의료진 인력을 늘릴 방법은 없다는 점이다. 결국 다른 어떤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딥카스를 매우 긍정적으로 봤던 것은 이 인력의 공백을 메워줄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용해 본 결과 딥카스는 간호사 몇 명의 역할을 맡아 줄 수 있다. 결국 환자 바이탈 사인 체크와 심정지 예측 등의 일을 딥카스에게 맡긴다면 다른 일, 예를 들어 중환자 케어 등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기는 셈이다.
신의료기술평가 유예 제도를 통해 리얼월드데이터가 쌓이며 유효성을 인정받기를 기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의료 인력 부족을 메울 수 있는 도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또한 논문으로는 충분히 검증할 수 없는 부분들이 실제 현장에서 체감되는 부분도 있을 것으로 본다. 한가지 더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딥카스 같은 케이서는 사실상 예방의학의 부분에 가까운 만큼 이러한 기술들은 평가에서 가산점 등을 부여하는 것도 고려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신채민-의료 AI가 식약처 허가를 받은 사례는 많지만 신의료기술평가 대상에 오른 것은 딥카스가 첫 사례다. 중요한 이유는 앞서 이예하 대표의 설명처럼 현재 의료인이 할 수 없었던 영역, 새로운 정보와 행위를 만든 것이 신의료기술 평가 대상에 오르는데 중요한 지표가 됐다.
딥카스는 24시간 내에 심정지를 예측하는 의료기기로 행위별 수가 코드에 지정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의료 행위다. 그 동안 의료 AI들은 X레이를 보고 병변을 체크하거나 영상 진단을 분석하는 기능에 머물렀다. 이 행위는 기존 영상 판독료라는 코드가 존재한다. 설사 판독료가 없더라도 기존에 하던 행위를 보조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
앞으로 AI를 개발하는 기업들도 이 부분을 충분히 검토했으면 한다. 이미 개발한 제품이라도 업그레이드 등을 통해 이 부분을 보완한다면 신의료기술평가 대상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이다. 보건의료연구원에서도 이러한 혁신 기술에 대해서는 평가 보고서에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면서 가능성을 많이 어필해 어떻게든 통과되도록 방법을 찾고 있다. 계속해서 강조하지만 딥카스와 같이 급여권에 들어갈 수 있는 다양한 트랙이 있는 만큼 보건의료연구원의 많은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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