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적 근거 몰라요."
치매예방에 대한 총명침의 의학적 근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서울시 건강증진과 관계자는 이렇게 답했다.
순간 머리 속이 하얘졌다. 워낙 기본적인 질문이라 당연히 답변이 나올 줄 알았다. 질문을 받는 이가 당황스러워야 할 상황인데 오히려 취재를 하던 기자가 당황스러워졌다.
정신을 가다듬고 한방과립제의 안전성과 효과에 대해 물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그에 대한 답변은 못 드린다. 한의사협회에 물어보든지 하라"고 말했다. 기자를 또 한번 당황스럽게 만드는 답변이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8일 어르신에 대한 무료 건강상담과 치매, 우울예방 관리를 위해 어르신에게 친숙한 한의원과 협업으로 '어르신 한의약 건강증진' 시범사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MMSE, GDS 검사 결과, 인지기능저하자 등 치매 위험이 높고 우울감 있는 어르신에 대해서는 1:1 생활·행태개선교육, 총명침, 한약과립제 투여 등 8주 프로그램에 들어갈 예정이다.
기자가 서울시에 취재를 시도한 이유는 총명침과 한약과립제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의학적 근거를 물었지만 임상연구 수준의 효과 입증과 안전성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서울시 차원에서 추진하는 한의약 치매 예방사업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프로그램에 대한 검증을 거쳤을 것이라 믿었고 그 검증 과정을 묻고자 했다.
총명침을 백회에 놓아야 하는지 사신총에 놓아야 하는 지는 당연히 한의사에게 묻는 게 맞다. 그러나 서울시가 총명침을 치매예방 사업에 포함시켰다면 왜 포함시켰는지 정도는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실무자다.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모르겠다"라는 말로 일축한 서울시의 답변은 무책임을 넘어 무서웠다.
서울시는 올해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결과를 평가한 뒤 확대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그러나 평가방법은 무엇인지, 성과는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서울시민의 세금이 투입되는 사업이고, 더구나 노인의료비 부담이 급증하는 시점에서 어르신들의 치매예방을 위한 사업이라면 당연히 사업의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검증은 거쳤어야 한다.
돌이켜 생각하면 서울시의 건강증진사업은 늘 그런 식이었다. 의학적 전문성이 뒷받침 돼야 실효성을 거둘 수 있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의료계는 항상 뒷전이었다. 시민 편의성과 접근성이는 핑계 하에. 약국에서 자살 예방상담을 받게 한 사업이 대표적이다.
서울시가 시민의 자살과 어르신들의 치매가 걱정된다면 TF를 꾸리고 대한의사협회와 논의를 거쳐 정신건강의학과, 신경정신과 등 각 과 전문가들을 비롯해 노인의학회 등 관련 학회의 자문을 구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그러나 한의약 치매 예방 사업과 관련한 서울시의 보도자료에는 '
어르신에게 친숙한 한의원과 협업으로'가 근거의 전부였다. 눈을 씻고 찾아도 한의약의 어떤 효과가 사업 추진의 배경인지는 없었다.
이쯤에서 서울시의 생각이 궁금하다. 진정 시민의 건강이 중요한지, 아니면 시민의 박수가 우선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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